Review/Book

살고싶다는 농담

살고 싶다는 농담
국내도서
저자 : 허지웅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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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기억력이 안 좋아서 항상 결과만 기억함 -_-)

 

아프다고 해도 별로 신경가는 사람이 아니었고

베스트셀러에 올라도 또 무슨 말장난이나  끄적였겠지 싶었다.

말은 잘하는 사람이니까.

 

(누가 '싫어한다면서 왜 읽었어' 하길래 말하는데..)

호기심에 잠시 열어봤다가 이끌리듯이 계속 다음장을 넘기게 됐다.

 

보통 에세이.. 라고 하면..

저자 말마따라 쌀로 밥짓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스윽 읽고선 좋았어. 응. 하고 넘어가기 마련인데

비슷한 연배에서.. 삶을 살아가는데 느끼게 되는 것들이 공감이 갔다.

살면서 마주쳤던 절망스런 순간들을 어떻게 직시하고 바로 나갈 것인가에 대해

어느정도 실체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고 본다.

 

꽤 많은 부분을 북마크해 두었다.

 

불행의 인과관계를 따져 변수를 하나씩 제거해보며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대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요컨데 불행의 인과관계를 선명하게 규명해보겠다는 집착에는 아무런 요점도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건 또다른 고통에 불과하다. 그러한 집착은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인과관계를 창조한다.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하고 반추해서 기어이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 낸다. 나는 언제까지나 피해자여야만 하다는 생각은 기이하다 ... 당장 이기기 좋은 전략일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망친다.

사람의 능력으로 특정할 수 있는 몇가지 원인을 고치거나 없앤다고 해서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 충분한 원인과 조건이 갖추어졌기 대문에 결국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일이라는 이야기다.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결과를 감당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있는 힘껏 노력할 뿐이다.

 

공동의 선이나 대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판단했을 때 우리는 쉽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심지어 거짓말이 아니라고 인식한다.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거짓만이 오직 거짓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한 마음으로부터 악한 행동이 나올 수 있는가. 그렇다. '공동의 선이나 대의'라는 것은 어느 언덕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 네 이웃과 공동체를 해롭게 하라 가르치는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의를 이해하되, 우리는 그 선의가 이끌릴 수도 있는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도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역사속 각기 다른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가장 나쁜 일들과 애국 애족의 이름으로 촉발되었던 크고 작은 전쟁은 대개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국가폭력은 서로 돕는 자들을 불신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이와 같은 사유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다툼과 반목, 편가르기가 애초 어떤 원리를 통해 작동하고 있었는지 상기하게 만든다.

 

닉슨은 자신이 피해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가장 끔찍한 일마저도 더러운 일이 아닌 다른 결과 맥락을 가진 복잡한 것일 뿐이라고 믿었다. ... 그는 끝까지 억울했다. 요컨데 '나는 피해자니까 옳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없는 억울함을 기반으로 어떤 부정을 저지르더라도 '나는 피해자니까 나의 부정은 너희들의 부정과는 달리 국가 안보와 같은 더 큰 선을 위한 것이며 여기에는 매우 선명하게 다른 결이 있다'는 괴상한 자신감을 가졌다.

 

대부분의 성공에는 운이 따른다. 반면 실패는 악운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패는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직면한 실패가 자연스런 결과로서의 실패인지, 혹은 의도에 의한 음모와 배신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다. 중요한 건 다음이다. 나라는 인간의 형태는 눈앞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순간 결정되는 것이다.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살다보면 크고 작은 배신과 실패를 직면하게 될 일이 반드시 생긴다. 이에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비슷한 일이 한두 번 반복되다 보면 평상시에도 자연스레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바꿀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

 

네가 아무리 추악한 결론에 이르러 있더라도 아직 그것은 삶의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는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그것을 이루려면 피해의식으로부터 결별하여 마침내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을 외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선언을 해도 좋고 맹세를 해도 좋으며 실험을 해도 좋다. 하지만 그걸 실천하려고 삶을 거는 건 무식한 일이다. 슬픔을 나누면 행복이 되거나 최소한 슬픔이 쪼개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옳다고 생각하는 걸 실험하기 위해서 실명으로 자기 삶을 공유해선 안된다.

 

피해자는 그냥 피해자다. 착한 피해자도 나쁜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말은 불필요하다. 그런 말을 하는 자에게는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숨은 의도가 반드시 있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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